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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맛

모던타임즈 오즈야스지로 무성영화 비교

by 비마셀 2022.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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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무성영화는 유성영화가 만들어지기 전 기술력의 부족으로 소리를 담을 수 없었던 영화를 뜻한다. 무성영화의 특징은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없기 때문에 배우들의 과장된 표정과 몸짓 등 시각적으로 전달되는 표현력이 뛰어나다는 점인데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태어나기는 했지만>,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서도 이러한 특징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사를 조이는 찰리 채플린

모던타임즈 무성영화 특징 

<모던 타임즈>에서는 특히 과장된 몸짓, 표정 묘사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는 찰리 채플린이 희극배우로서의 진면목을 여실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는 공장에서 일하는 단순노동자로서 컨베이어 벨트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나사를 쉴 틈 없이 조인다. 그 과정에서 겨드랑이를 긁다가 늦어지는 장면, 벌레가 날아와 얼굴을 맞는 장면, 동료와 티격태격하는 장면 등을 통해 익살스러운 모습들을 연출한다. 특히 계속되는 노동 과정으로 인해 톱니바퀴에 빨려 들어가면서도 나사를 조이는 장면, 나사로 보이는 모든 물질들을 조이려는 일련의 행동들은 반복되는 고된 노동에 대한 강박 증세를 나타내는데, 이러한 장면들은 기계화된 인간의 모습을 희화화하고 풍자하면서 인간소외를 만든 시대상을 비판하는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태어나기는 했지만 무성영화 특징

<태어나기는 했지만>에서도 이러한 무성영화의 특징을 담고 있다. <태어나기는 했지만>에서도 역시 과장된 행동들은 영화의 주제를 부각시키는데 적절히 사용된다. 이 영화는 아이들의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세계, 즉 어디서나 당당하고 멋진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자식들의 편견과 달리 상사에게 순종하고 비위를 맞추는 아버지를 통해 부에 따른 계급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권력의 중심에 선 아이는 손짓 하나로 다른 아이들을 굴복시키기지만 아버지는 친구의 아버지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몸짓을 통하여 친구의 아버지인 직장 상사의 비위를 맞추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반항하는 모습, 아이를 허리까지 들어서 엉덩이를 때리는 모습은 무성영화 특유의 과장된 행동으로써 관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러한 모습들이 영화 곳곳에 묘사되면서 극의 몰입도와 재미를 높여 부자간의 대립을 자연스럽게 이끌어간다.

태어나기는 했지만의 장면

그 외 무성영화 특징비교 

이 두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무성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대사 대신 삽입된 자막과, 악기 연주 소리이다. 무성영화라고 해서 자막과 소리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장면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막을 넣기도 했고, 피아노나 첼로 등의 악기가 영화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거나 경쾌함을 더하기도 했다. <모던 타임즈> 에서는 공장 사장의 단호한 억양의 명령조 대사를 유성으로 그대로 전달하면서 노동자들이 쉴 틈 없이 감시받고 있다는 모습을 부각시켰고, 소매에 적어 놓은 대사를 잃어버린 찰리 채플린의 엉터리 노래와 관객들의 호응 소리 역시 소리를 사용하여 극의 재미를 한층 드높였다. <태어나기는 했지만>에서는 인물들의 유성의 대사는 없었지만 피아노 배경음을 통해 상황의 분위기를 잘 묘사할 수 있었고 두 영화 모두 빠른 리듬감을 가진 배경음을 사용했지만 ,<모던 타임즈>에서 보다 더 빠른 배경음을 사용해 인물들의 과장된 행동들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두 영화의 당시 시대적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두 영화는 1929년 세계 대공황 이후 장기화된 경기 침체와 실업이 만연할 때 개봉되었다. 따라서 <모던 타임즈>에서는 계속되는 실업과 공장 파업의 모습을 볼 수 있고, <태어나기는 했지만>에서는 시대를 풍자하는 모습은 찾기 어려웠지만 경제 불황 속 직장인의 비애와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좀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부자의 갈등, 그리고 아버지의 삶

오즈 야스지로는 한 가정에서 일어난 부자간의 갈등을 카메라에 담았지만 그 내용은 모든 아버지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큼 깊은 울림을 자아낸다. 부자간의 갈등은 서로의 세계관 차이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힘이 세고 공부를 잘하면 대장 노릇을 할 수 있고 암묵적 서열은 존재하지만 뚜렷한 위계질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부유함의 정도는 작은 마을 안에서 같은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의 또래집단 형성에 중요한 덕목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존심이었고 모두에게 웃음거리가 된 우스꽝스러운 아버지의 모습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어른들의 세계, 아버지의 모습은 모순적이고 불합리하다. 가장 멋있고 훌륭하다고 생각한 아버지가 실망스럽기도 하고 배신감마저 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세계는 실제로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확고한 위계질서가 존재하고 비위를 맞춰야 하고, 인정받지 못하면 미운 털이 박혀 진급이 안 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해고당할 수도 있다. 그것은 곧 가정의 생계와 직결된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이들을 부양하고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서 아버지는 상사에게 거듭 정중하게 인사하고 비위에 맞춰 행동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공감과 씁쓸함이 남긴 여운

 

아이들은 바보처럼 행동하는 아버지를 집적 목격했을 때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서 부자는 갈등을 겪었고 아버지는 아픈 마음으로 아들을 체벌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의 심정을 이해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행동해야만 하는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에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한 건지 상사에게 인사하는 모습을 외면하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 영화의 내용은 우리의 삶을 정확히 꿰뚫고 있어서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씁쓸했고, 불편했고 그래서 더욱 몰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속 아버지의 모습은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하고, 철없이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은 고된 아버지의 삶을 모른 척하고 매번 삐딱하게 굴었던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씁쓸함과 먹먹함의 여운이 오래 남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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